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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환 담임목사가 이천신하교회 성도들에게 드리는 두번째 글.
2020-03-17 13:34:00
교구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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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상황에서 이천신하교회의 입장

누구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코로나19’ 라는 재난으로 영상예배를 드려야 하는 교회적 상황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교회가 언제까지 교인들의 출입을 금하고 영상으로만 예배를 드려야 할지에 대한 시기적 고민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이 사태에 있어서 혹, 영상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한 신앙적 아쉬움이 있는 성도들에게 먼저는 영상예배에 대한 신학적 역사적 근거를 말씀드리고 싶고 그리고 혹, 이 사태가 장기화가 될 가능성이 있는 상태이기에 우리교회가 가지고 있는 대원칙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여러 성도님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여 몇 가지 의견을 나누길 원합니다. 좋은 글과 건강한 교회들의 입장이 있어 우리교회 상황에 맞게 정리하여 함께 공유하고자 올립니다

 

1. 영상예배를 드리는 근거

영상예배를 드리는 근거를 분명하게 알아야 목회자도 성도들도 그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근거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 교회사적 근거

14세기 흑사병 때 유럽의 카톨릭 교회는 전염병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한다고 하여 성당과 수도원에 모이게 함으로써 전염의 매체가 되었습니다. 각주1) 그러나 16세기 흑사병이 독일에 돌 때 루터는 성도들의 모임을 자제하게 함으로써,각주2) 공중보건을 중요시했습니다.각주3)

▲ 성경적 근거

레위기 13장과 14장에는 무서운 전염병인 나병이 다른 사람들을 전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치료가 될 때까지 강력한 격리를 시행했습니다. 성경도 공중보건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3장 4절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이 말씀을 근거로 할 때 우리가 모여서 예배를 드림으로 다른 교우나 이웃에게 ‘코로나19’를 감염시킨다면, 이 말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 현 사회적 근거

현 한국사회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신천지의 거짓과 은폐로 인해 대구경북과 여러 지역에 전염이 확산되어 사회적 비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공중보건에 대한 책임을 도외시하면 사회적 비난으로 전도의 길,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는 길이 막힐 수 있습니다. 어제(3월 15일)도 성남의 모 교회가 성도들에게 소금물 소독을 시행함으로 사회적으로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생겼습니까? 우리는 위와 같은 교회사적, 성경적, 현 사회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런 특수한 상황에 일시적으로 영상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상예배를 예배가 아닌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영상예배를 드리는 것은 예배가 중단된 것이 아니라, 예배의 장소만 바뀐 것입니다. 다윗도 사울왕에게 쫓겨다닐 때 성막에서의 예배를 드릴 수 없었고, 다니엘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성전 예배를 드릴 수 없었지만, 공동체 예배를 떠난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위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2. 주의할 점

▲ 교회의 생명은 예배입니다. 그것도 공동체적 예배입니다.각주4) 특수한 상황에 일시적으로 가정에서 영상예배를 드릴 수는 있지만 결코 장기화 되어서는 안됩니다.

▲ 편리주의와 무교회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공동체적 예배가 회복된 후에도 예배당에 나오지 않는 무교회주의, 그리고 너무나 쉽게 결석하고 집에서 인터넷 방송으로 예배드리는 것은 주의하여야 하겠습니다.

 

3. 대원칙

▲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특수한 상황에 일시적 영상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 예배는 결코 중단될 수 없습니다. 다만 장소만 바뀐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이천신하교회입니다

▲ 그러나 조속히 공동체 예배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배의 공동체성은 중요합니다. 장기화될 수 있는 ‘코로나19’ 사태에 확산추이를 지켜보면서 확산의 진정세가 보인다면 질병본부의 지시를 준수하여 (마스크착용, 손 소독, 체온체크, 거리유지)순차적으로 1부 예배부터 열어 갈 것입니다.

 

각주1)
14세기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중세 카톨릭은 신앙으로 이겨야 한다며 온 신도들을 교회로 모이게 하였다. 유럽 인구 2,400만 명이 죽었다. … 더 기가 막힌 것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르면 죽음의 신이 넘어간다는 말이 안되는 의식을 행했다. 위생 상태가 안 좋은 상태에서 짐승의 피까지 발랐으니 더 악화될 수 밖에 없었다. 좁은 예배당에 사람들을 모아서 한꺼번에 순식간에 유럽으로 번진 것이다. 조상원, “코로나 19 사태와 주일 예배 중단 문제에 관한 제언,” 개혁타임즈, 2020. 3. 1, p. 1, 5.
그들은 구약의 유월절 제도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의 예표로서 십자가에서 성취된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신학적 무지로 이런 조치까지 행한 것이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징계를 거역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종교적 태도는 병에 대한 저항 의지를 앗아갔다. 결과적으로 이 병이 널리 확산되도록 부채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필립 지글러(Philip Ziegler)는 그의 책《흑사병》(The Black Death)에서 “역병이 확산되는데 있어서 이 종교적 신념보다 더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 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썼다. 이상규, “중세 흑사병 재앙은 하나님의 징계였나?” 교회와 신앙
, 2005. 9. 26, p. 3.

 

각주2)

종교개혁시대 흑사병이 발생했을 때 루터는 그곳에 오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 루터의 집은 원래 수도원 건물이었고 그곳에 많은 환자가 머물러 치료를 받았다. 당시 루터는 감염을 우려하여 성직자들에게 환자들이 있는 그곳에 오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아마도 14세기의 로마 카톨릭 교회가 페스트가 창궐할 때, 한 곳에 모여 미사를 집행하여 많은 사람이 죽은 사실을 기억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조상원, pp. 1, 5.

 

각주3)

루터는 숙명론을 거부했고,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몇 가지에 대항했다. 그는 다양한 공중보건 수단을 지지했다. 그 공중보건 수단은 인간의 후생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시행되는 방역은 구약성경에 ‘나병환자들’에 대한 가르침(레위기 13-14장)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장례를 진행하는 것과 의사를 고용하는 것처럼 방역과 질병예방의 수단은 14세기 이후 도시와 국가 정부에 의해 시행되어왔다. 루터는 주저함 없이 시 당국의 조치를 지지했다(로마서13장). 그는 하나님이 주신 선한 선물인 인간이 만든 약과 치료 정보를 칭찬했다. 병원은 가족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하여 건축되어야 한다. 루터는 사람들의 건강을 보존하고, 질병의 확산을 제한하기 위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라’고 격려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에 대해 부주의함으로 병을 얻고, 다른 사람들에게 감염을 시킨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살인죄이다. 고의적으로 질병을 확산시키는 사람들은 처형해야 한다

 

각주4)

예배학자 Franklin M. Segler 교수는 ‘예배 공동체’를 특별한 의미를 담아서 표현했는데, 기독교의 예배는 협력적 행위가 필수적이다(a corporate activity is essential). 교회는 ‘예배하는 유기체’(a worshipping organism)이다. 조상원, p.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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